TEL: 051-897-6404    FAX: 051-897-6532

방명록


개성고역사관 개관 30주년 기념 - 동길산 시인 역사관 탐방기 1
  개성고역사관 개관 30주년 기념 - 동길산 시인 역사관 탐방기 1
작성자 : 관리자 / 2021-11-06 오전 9:54:32
내용

개관 30주년 <개성고 역사관> 탐방기1

120년 넘는 눈부신 역사담아

동길산 시인

중학교 동기 전교 1등과 2등은 부산상고로 진학했다. 부산상고는 그때 서면 한복판에 있었다. 지금 롯데백화점 자리가 거기다. 1등 동기는 이후 서울대 상대로 갔고 2등 동기는 연세대 상대로 갔다.

우리 때는 그랬다. 부산에서 공부 좀 한다는 중학생은 부산상고가 스카우트했다. 미래의 인재가 부산상고로 모였다. 인문계 고교가 평준화되면서 부산상고는 부산 최고의 명문으로 부상했다.

부산상고는 훨씬 이전부터 명문고였다. 부산의 명문고였고 한국의 명문고였다. 그 증명이 부산진구 당감동 개성고등학교 역사관이다. 부산상고와 개성고?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하등 이상할 게 없다. 둘은 같은 학교다. 부산상고 원래 교명이 개성학교였다.

개성고 역사관은 이 학교 120년 넘는 역사를 오롯이 담았다. 1895년 개성학교로 첫발을 내디딘 이후 부산상고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학교에 관한 거라면 하나에서 열까지 죄다 담았다고 보면 된다. 1991년 개관해 올해 30주년을 맞았으니 역사관 자체가 이미 역사가 되었다.

무엇이 담겼을까. 보이는 것도 많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더 많다. 1·2·3관과 별관, 특별관 전시품은 85백 점 정도. 수장고에 보존된 자료는 무려 수만 점이다. 이쯤 되면 고교 역사관이 아니라 대학 박물관 내지는 부산 기록관 수준이다. 눈을 가리고서 개성고 역사관, 대학 박물관, 부산 기록관 중에서 하나를 집어내라고 한다면 열에 아홉은 개성고 역사관을 콕 집어내지 싶다.

박기종. 역사관 맨 처음에 접하는 이름이다. 박기종은 역사관의 맨 처음이자 개성학교의 맨 처음이며 부산 근대화의 맨 처음이다. 살아생전 한국의 철도왕으로 불렸으니 한국 근대화의 맨 처음이기도 하다. 개성학교 설립자 다섯 가운데 중심인물이 박기종이었다.

박기종은 현재도 진행 중인 인물이다. 과거사에 파묻힌 이름이 아니고 살아서 꿈틀대는 이름이다. 대연동 부산박물관에선 유물과 비석으로, 좌천동 부산진성 공덕비로, 영주동 산복도로 기념관으로 접한다. 특히 부산박물관 유원각선생매안감고비비석은 국보급. 부산의 국보급이 개성학교 설립자 박기종이었다.

명문고는 왜 명문고일까. 명문고의 기준은 뭘까. 좋은 대학 많이 줄줄이 가고 좋은 직장 줄줄이 가도 명문고겠지만 그게 다는 아닐 것이다. 다른 뭔가가 있을 것이다. 그게 다라면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얼마나 헐겁고 얼마나 가벼운가. 개성고 역사관은 그게 다가 아니란 걸 증명하는 우리 시대 죽비다.

개성고는 부산의 기개였다. 부산의 기개였고 부산의 정신이었다. 그 기개, 그 정신은 지금도 시퍼렇다. 부산진구 초읍 어린이대공원에 가 보라. 거기 부산항일학생의거 기념탑이며 박재혁 의사 동상은 개성고가 어째서 명문고인지 백문이 불여일견으로 웅변한다. 개성교 교정 개교 100주년 기념탑 역시 부산의 기개, 부산의 정신을 기린다. 36! 단일 학교로는 가장 많은 36명의 독립유공자가 개성고에서 나왔으며 한국전쟁이 나자 267명이 학도병으로 나섰다.

봉래초등 나왔어요? 그러면 우린 동문입니다.” 개성고 역사관 노상만 관장은 친화력이 뛰어나다. 역사관을 취재하려고 만나기에 앞서 톡으로 문자를 주고받았다. 내가 어디 초등학교 출신이라고 밝히자 대뜸 나를 개성고 동문으로 불러준다. 중학교 동기 1, 2등이 간 학교의 동문이 된 기분에 괜히 우쭐해진다. 부산상고를 1969년 졸업하고 고교 교장으로 퇴직한 노 관장의 그런 친화력은 개성고 역사관을 시민 친화 공간으로 이끌어나가리란 믿음을 준다.

그런데 봉래초등과 개성고는 무슨 관계일까. 무슨 관계라서 동문으로 불러줄까. 둘은 뿌리가 같았다. 한 뿌리였다. 1895년 설립한 개성학교가 연륜이 쌓이고 덩치가 커지면서 이후 초중고로 나뉘었다. 봉래초등과 개성중, 개성고의 뿌리가 개성학교였다. 그래서 세 학교 모두 연혁에 1895년 설립했다고 밝힌다.

개성고 있는 곳은 백양산 자락. 백양산은 부산진구 진산이니 자리를 잘 잡았다. 그러고 보면 부산상고 시절의 학교 상징이 백양이었다. 중학교 1등 동기에게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런가보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백양과 부산상고, 백양산과 개성고. 인연은 이렇게 면면히 이어진다.

백양(白楊)은 설립자 박기종 선생이 일본에서 가져와 학교와 학교 주변에 심은 나무. 이후 학교의 상징이 되었다. 백양은 껍질이 하얗다. 하얀 껍질이 햇살을 바로 받으면 눈이 다 부시다. 백양처럼 눈부신 이 학교의 120년 넘는 역사! 그것을 오롯이 담은 개성고 역사관 역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만큼 눈부시다.

dgs1116@hanmail.net

<본 탐방기사는 부산진구청에서 후원하여 동길산 시인께서 우리역사관을 방문하여 오랜시간 동안 취재하신 내용입니다. 서은숙 부산진구청장님께서 우리 역사관을 방문하시고, 개성고역사관은 부산의 개항사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품고 있는 역사자료가 많이 전시되어 있음으로 우선 부산진구 구민들께서라도 먼저 관람을 하도록 권유하는 뜻에서 '부산진구청신문' 을 통해 구민들에게 홍보차원에서 기획된 것입니다. 서은숙 구청장님, 부산진구신문편집장 차대진, 동길산 시인님께 감사드립니다. 개관 30주년을 맞아 부산시민, 국민과 함께하는 개성고등학교역사관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리스트 답글
성명 비밀번호
댓글쓰기

이전10개  다음1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