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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


개성고역사관 개관 30주년 기념 - 동길산 시인 역사관 탐방기 4
  개성고역사관 개관 30주년 기념 - 동길산 시인 역사관 탐방기 4
작성자 : 관리자 / 2021-11-06 오전 9:56:59
내용

개관 30주년 <개성고 역사관> 탐방기 4

우리 이전에도, 우리 이후에도

동길산 시인

한국교원대에서도 자료를 구하러 옵니다. 거긴 없는 게 여긴 있으니까요.” 한국교원대학교가 어딘가. 한국 최고의 교원양성 종합 교육기관 아닌가. 부산에선 꽤 먼 거리인 충북 청주에 있지만 현직 교사들이 연수를 받으려고 수시로 들르는 곳이다. 보름이고 한 달이고 연수를 실시하는 그곳에서 자료를 구하러 온다는 역사관 노상만 관장의 어조에는 자부심이 뚝뚝 묻어난다.

조선실업학교령(1909). 학생군사훈련 현황. 근로보급대 작업수료증서. 학교생활기록을 담은 선행장 수첩과 수학일지(修學日誌). 일제강점기 전후부터 광복 이후까지 기록인 이 모든 자료는 제목만 적어도 대학노트 열 권이 넘지 싶다. 이들 자료는 당대 교육정책을 증명하는 실체. 그 먼 청주에서도 찾아오고 부산교육청에서도 찾아와 복사해 가거나 영인본을 구해 간다.

왜정 때 동창회지를 26차례 발행했어요. 기념관에 스물세 권이 보존돼 있고요.” 개성고가 보유한 기록은 방대하다. 이 방대한 기록은 곧 개성고의 역사이면서 개성고의 힘이다. 이 역사, 이 힘이 토대가 됐기에 개성고는 명문고로 나아갈 수 있었다. 개성고 기록의 많은 부분은 일제강점기 동창회지가 출처다. 동창회지는 1913년 가을 창간호가 나온 이래 광복 전까지 이어졌다. 종이도 귀하고 인쇄도 열악하던 그 시절, 무엇보다 조선의 역사가 왜곡되던 그 시절, 동창회지는 진지했다. 진지했고 숙연했다. 친목 도모가 아니라 시대를 증언했다. 회지의 10%만 동창 근황이었고 나머지는 당대 교육과 나아갈 미래에 대한 성찰이었고 고민이었다.

부산에 최초로 들어온 인쇄기.’ 한강이남 최초의 근대학교답게 개성고는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일이 많았다. 인쇄도 그랬다. 인쇄소가 따로 없었으니 교지며 시험지며 졸업장 같은 각종 증명서의 인쇄를 학교가 직접 해야 했다. 그래서 1896년 부산 최초로 인쇄기를 들였다. 기종은 TOKO OFFSET, Model-810. 1938년 아들이 합격한 기념으로 통영 송병문 선생이 기부한 독일제 그랜드 피아노 역시 학교 교육용으로는 부산 최초였다. 개성고는 이래저래 부산 최초다.

개성학교 3회 윤상은은 본인은 물론 아들도 조카도 최초다. 본인은 우리나라 최초 민족계 지방은행인 구포은행을 설립했으며 아들 윤인구는 부산대 초대 총장, 조카 윤현진은 상해 임시정부 초대 재무차장을 맡았다. 그때 재무총장은 광복 이후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이었다. 윤상은 본인은 해외 독립운동가 자금지원을 위한 대부에 협력하면서 일제와 각을 세웠고 조카 윤현진은 만 서른이 되기도 전인 1921년 이역만리에서 순국했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을 받았다.

개성고에는 최초만 있는 건 아니다. 많기는 최초가 아닌 게 훨씬 많다. 최초와는 무관하게 밤하늘 은하수처럼 영롱한 그것들. 뉴턴의 사과나무도 그중의 하나다. 최초의 뉴턴 사과나무 41대손에 해당하는 나무가 교정에서, 그 열매는 기념관에서 영롱하다. 당감동 이전을 기념해 재일본 개성고 동창회에서 19895월 기증했다. 재학생들이 만물을 유심히 살펴서 노벨 과학상 받기를 바라는 선배의 마음이 담겼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모과나무도 뿌리를 내렸다. 단재는 일제강점기를 뜨겁게 살았던 독립운동가·사학자·언론인. 의열단 선언을 지었다. 지난호에 언급했듯 2021년 올해는 의열단원 박재혁 의사 순국 100주년이다. 511일 광복회 회장이 개성고에서 특강했다. 그때 신채호 모과나무를 심었다. 단재가 아홉 살이던 1888년 심은 나무에서 난 씨앗으로 키운 나무였다.

개성고는 한국 여섯 번째 고등학교. 개성고보다 역사가 앞선 다섯 가운데 넷은 서울에 있고 하나는 인천에 있다. 그 외에는 개성고가 최고 오래된 학교다. 동래여고는 개성고와 같은 해인 1895년 설립했지만 다섯 달 늦다. 개성고 상징인 백양은 높고 굵은 나무. 상공계는 물론이고 교육계, 학계, 문화예술체육계, 정관계 등등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튼실한 뿌리를 내렸다.

개물성무(開物成務).’ 역사관 목 좋은 자리 현판에 새긴 이 네 글자는 개성고의 건학이념이다. ‘개성이 네 글자에서 나왔다. 공자 말로 고려의 서울이던 개성(開城)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세상 온갖 문물()이 갖는 이치를 깨우쳐() 큰 일()을 이룬다()’는 뜻이다. 글씨를 쓴 이는 윤보선 전 대통령. 부산상고 개교 92주년 기념 휘호다.

민족의 정신, 독립의 정신, 노무현의 정신을 잘 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양의 영원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개성고 역사관은 부산 정신의 알갱이다. 석회동굴 종유석처럼 딴딴하고 뾰족하게 맺힌 부산의 정신, 부산의 결기를 한데 모은 개성고 역사관. 얼마나 딴딴한지 보려고, 얼마나 뾰족한지 보려고 가까이서 멀리서 찾아온다. 부산진구 서은숙 구청장이 방명록에 남긴 글귀처럼 백양의 발전을 기원하는 마음에서다. 학교 상징인 백양은 하얘서 눈부신 나무. 우리 이전에도 눈부셨고 우리 이후에도 두고두고 눈부시리라. .

dgs1116@hanmail.net

<본 탐방기사는 부산진구청에서 후원하여 동길산 시인께서 우리역사관을 방문하여 오랜시간 동안 취재하신 내용입니다. 서은숙 부산진구청장님께서 우리 역사관을 방문하시고, 개성고역사관은 부산의 개항사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품고 있는 역사자료가 많이 전시되어 있음으로 우선 부산진구 구민들께서라도 먼저 관람을 하도록 권유하는 뜻에서 '부산진구청신문' 을 통해 구민들에게 홍보차원에서 기획된 것입니다. 서은숙 구청장님, 부산진구신문편집장 차대진, 동길산 시인님께 감사드립니다. 개관 30주년을 맞아 부산시민, 국민과 함께하는 개성고등학교역사관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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